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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출근의 기적' by Ryunan


아침 9시에 천안에서 출근을 해야 해서, 원래는 어제 일요일 밤에 다시 내려왔어야 하는데 주말에 하도 질펀하게 놀아서 (...)

그냥 본가에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서울에서 바로 천안으로 내려와 집에 안 들리고 출근하려고 했다.



출근시간은 아침 9시. 7시 14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천안 급행 전철을 타면 약 45분쯤 천안역 도착.

그리고 천안역에서 내가 일하는 곳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 모든 것이 계획대로 딱딱 맞아 떨어져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버스를 타고 둔촌동역에서 내려, 서울역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7분. 4호선 서울역에서 내려 1호선 급행 전철을

갈아타는 곳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5분 정도로 감안하면 6시 30분쯤에 전철을 타고 출발하면 여유롭게 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 망할 신호가 걸리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웠다.



둔촌동역에 도착하기 전 교차로 코앞에서 신호가 걸렸다. 그래서 그 신호 대기 시간으로 약 2분정도를 까먹은 뒤에 둔촌동역에

도착한 시각은 27분. 서둘러 카드를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아뿔싸. 내가 탈 전철이 막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멍한 표정으로 승강장 내에 있는 열차시각표를 보았다. 지금 떠난 열차는 6시 28분, 그리고 다음 열차는 6시 38분.



배차간격이 무려 10분!

(둔촌동역은 강동에서 갈라지는 5호선의 지선이기 때문에 본선 배차간격의 2배)



서울역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7분.

6시 38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고 최대한 빨리 서울역에 도착하면 7시 15분!

하지만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천안행 급행 열차는 7시 14분에 출발!

게다가 동대문운동장에서 4호선 환승하는 거리는 아주 길진 않아도 만만치 않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 올라가야 하고,

4호선 서울역에서 1호선 천안급행 떠나는 서울역 승강장까지는 그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길다.



아무리 열차가 빨리 도착하더라도, 38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면 급행 열차는 타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급행을 포기하고 완행을 타고 천안으로 가면, 최소한 3~40분은 더 걸리고, 천안역에 9시 반쯤 도착.

최단 루트를 이용하여 이동을 한다 하더라도 완행 전철로 9시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각이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그냥 지각을 할까... 아니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다른 루트를 이용해서 천안 급행 열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7시 14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급행 열차는 금천구청역에 정차하고, 그 다음에 안양역 정차, 그리고 군포역에 정차한다.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노선을 이용해서 그 급행 열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고,

그 가설로 루트 중 둔촌동(5) - 천호(8) - 잠실(2) - 사당(4) - 금정(1) 의 환승을 이용,

금정역 바로 다음역인 군포역에 천안 급행보다 먼저 도착하는 방법이 가장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은 유력한 루트였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천호, 잠실, 사당, 금정 이렇게 네 번이나 열차를 갈아타야 하고, 갈아타는 환승 통로의 길이도 고려,

그리고 열차가 내가 도착할 때마다 제 시간에 도착해줄 리가 없기 때문에, 환승시 조금이라도 열차가 늦어 지체되면

절대로 군포역에서 급행을 따라잡지 못하고 먼저 보내버려야 하는 성공률이 극히 낮은 방법이다.


 
잠깐동안 고민을 했다. 그냥 맘 편하게 지각을 할까, 아니면 돈을 더 들여서 버스나 기차를 탈까...

아니면 위험성이 굉장히 높지만, 그래도 성공 가능성 있는 이 루트를 이용해서 급행 열차를 따라잡아볼까...?



결국은 7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의 내 운을 한 번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고비.

천호역에서 8호선을 타기 위해 미친듯이 승강장으로 뛰어올라갔는데 열차는 없었고, 전광판에 열차 위치도 표시가 안 되어 있었다.

아, 첫 번째 환승역에서부터 이런 낭패를 보다니...ㅠㅠ

'음성직(5~8호선 도시철도공사 사장) ㅆㅂㄹㅁ, 음성직 ㄱㅅㄲ...'

이런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린 지 5분만에 마침내 모란행 열차가 왔다.



두 번째 고비.

잠실역에 도착한 뒤, 2호선 타는 곳으로 마구 뛰었다. 원체 엄청나게 긴 통로에 약간 언덕이기 때문에, 정말 헉헉대며 뛰어갔는데

거의 다 도착할 무렵에 앞쪽에서 수많은 승객들이 8호선을 환승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아... 방금 열차가 떠나갔구나...ㅠㅠ 좌절감에 뛰던 것을 멈추고 터덜 터덜 천천히 2호선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2호선 승강장에 도착하니 전광판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라는 문구.

'역시 배차간격 짧은 2호선은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ㅠㅠ' 하며 금방 도착하는 열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세 번째 고비.

4호선 하행은 사당역이 종착인 열차와 오이도(안산)이 종착인 열차 두 가지로 나뉜다.

운 좋게 내가 4호선 승강장으로 내려갔을 때 다음 열차가 오이도행이면 다행이지만, 사당행 열차가 오면, 그 열차를 보내고

다음 열차인 오이도행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일단 그 생각은 뒤로 하고 2호선 사당역에 열차가 서자마자

다시 한 번 뛰기 시작했다. 4호선 환승 통로엔 현재 4호선 열차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걸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이도행 당역 정차, 열차 출발 예정'

'다음 열차 사당행'


지금 4호선 승강장에 오이도행 열차가 대기하고 있고, 이 열차를 놓치면 다음 열차는 사당행. 다다음 열차를 타야 한다.

게다가 환승통로 안에서 그걸 봤고, 열차를 타기 위해선 계단을 한 층 더 내려가야 하는데 열차가 기다려줄 리가 없다.

아... 정말 오늘은 왜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건가...ㅠㅠ 하고 절망하면서, 그래도 계단을 재빨리 내려갔는데, 세상에!



오이도행 열차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급히 달려가 오이도행 열차를 타자마자, 열차 출입문이 절묘하게 닫혔다. '아... 살았구나...'



네 번째 고비.

마지막 고비는 4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금정역. 여기는 4호선에서 내리면 바로 맞은편 승강장이 1호선 승강장이라

환승 통로로 고민할 문제는 없지만, 내가 내리자마자 바로 맞은편에 1호선 열차가 있을지 여부가 문제였다.

급행 열차는 금정역에 정차하지 않고 바로 다음역인 군포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금정역에서 일반열차를 기다리면서

눈 앞에서 금정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천안행 급행 열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금정역에 도착했을 때 최소 1~2분 이내에 병점이던 천안이던 가는 일반열차가 들어와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금정역에 도착했을 때, 내 소원을 들어줬는지 맞은 편에선 천안행 일반열차가

4호선 열차를 기다려주고 있었고, 천만 다행으로 그 천안행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이 때가 약 7시 4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일단 여기까지는 무사히 왔는데, 중요한 것은 천안 급행 열차가 이미 통과를 했나, 아니면 아직 안 했나 여부다.

내가 이렇게 여기까지 왔어도, 천안 급행 열차가 이미 금정, 군포역을 통과했다면 지금까지 한 고생은 말짱 헛것이 되니까...

급행 열차가 출발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바로 다음역인 군포역에 도착했을 때, 일반 열차 승강장 바로 맞은편 승강장을 확인하는 것.



일반 열차 바로 맞은편 승강장의 선로는, 평소엔 기차가 지나다니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항상 안전고리가 쳐져 있다.

그 안전고리가 빠져 있을 때는 하루에 딱 세번, 아침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서울에서 출발하는 천안 급행 열차가 지나갈 때 뿐이다.



그러니까 군포역에 도착했을 때 맞은 편 승강장의 안전고리가 빠져 있으면, 아직 급행 열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안전고리가 쳐져 있으면, 이미 급행 열차는 군포역을 통과했다는 뜻이 된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조마조마하며, 군포역 도착.










아 감사합니다...



안전고리는 빠져 있었고, 반대쪽 승강장에는 천안 급행 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여러 명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나오는 안내방송

'지금 천안행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9시 이전에 천안역에 도착. 회사에 전혀 늦지 않고 여유롭게 도착해 점심시간에 이 포스팅을 쓰고 있다.



아침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급행 열차를 간발의 차이로 놓칠 뻔 했는데, 다른 루트를 통해 그 열차를 따라잡는 것이 가능할까

매우 위험한 모험을 했었는데, 정말 간발의 차로 그 열차를 잡을 수 있었다. 어떤 열차 하나라도 놓쳤으면 끝장날 뻔했지만...

어쨌든 아침부터 한 모험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심장이 쫄깃해지는 숨막히는 경험이라, 절대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무슨 007작전도 아니고...

// 20090727


덧글

  • 농어 2009/07/27 12:55 #

    저는 지하철을 그런 재미로 탑니다 ㅇㅅㅇ(...)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재미를 느낄 일이 별로 없어서 슬플 뿐임다. 지하철 택배하던 시절이 저런 미션의 절정기였는데...(야)
  • Ryunan 2009/07/28 14:38 #

    지하철 택배를 하신 적이 있으시군요..

    저거, 솔직히 글 읽으면 엄청 스릴있지만, 당사자 되면 똥줄탑니다...ㅡㅜ 솔직히 싫어요 ㅠㅠ
  • Hawe 2009/07/27 13:13 #

    각본이 없던 드라마
    솔드아웃을 보는듯합니다
  • Ryunan 2009/07/28 14:38 #

    오전에 그냥 영화 한 편 찍었지요 -ㅅ-
  • 샛별 2009/07/27 13:21 #

    그런 스릴 넘치는 삶. 좋아요
  • Ryunan 2009/07/28 14:39 #

    전 싫어요..ㅠㅠ 얼마나 똥줄탔는 지 아세요 ㅠㅠ
  • 카이º 2009/07/27 13:35 #

    출근길만 영화로 찍어도 스릴넘치겠는데요 ㄷㄷㄷㄷㄷ

    다행이네요 ㅎㅎㅎㅎㅎ
  • Ryunan 2009/07/28 14:39 #

    네, 일단 해피앤딩으로 끝났으니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dunkbear 2009/07/27 13:57 #

    앞으로 계속 쬐금 스케쥴이 어그러져야 Ryunan님의 매일이 스릴넘치겠네요. ㅎㅎㅎ
  • Ryunan 2009/07/28 14:39 #

    앞으로는 스케줄 어그러지는 일 없이 항상 시간여유를 두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ㅅ-
  • 티피 2009/07/27 16:27 #

    올여름을 강타할 특급 스릴러 '지하철' (??????)
    땀빼셧네요
  • Ryunan 2009/07/28 14:40 #

    스릴러라기보다는 저건 액션이라고 봐야 되지 않나요;;
    어쨌든 새벽부터 저렇게 땀을 뺐으니...ㅠㅠ
  • Caras 2009/07/27 20:10 #

    저도 한번 이런 지하철 운빨 걸어보고 싶어요 ㅠㅠ...
    일이 제대로 풀려갈때마다 얼마나 짜릿할지..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을때마다 지하철이 바로 도착하길 얼마나 바라는지 어휴...ㅠㅠ
  • Ryunan 2009/07/28 14:41 #

    물론 마지막에 천안급행 열차를 탔을 때의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까지 가는 길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ㅡㅜ
  • 슈하 2009/07/27 22:23 #

    정말 스릴이 넘치는듯
  • Ryunan 2009/07/28 14:41 #

    똥줄도 넘쳤지요.
  • 도리 2009/07/28 17:57 #

    이렇게 위험천만했던 일을 저는 일본 기차여행 때 비슷하게 하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차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까봐 시도는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거야말로 액션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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