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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파는 할머니 by Ryunan


오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는 이제 허리가 굽어 제대로 일어서 걸을 수도 없다.

새우등처럼 굽은 허리로 지팡이 하나 없이 힘겹게 엉금 엉금 걷는 모습은 언제 넘어질 지 모르는 불안감에 위태위태.

그러나 할머니는 걷기조차 힘든 굽은 허리로 떡과 김밥이 수북한 무거운 짐을 들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으로 들어왔고,

성인 남자가 들어도 무거운 그 짐보따리를 들고 수많은 계단을 통해 역 안으로 내려와 좌판을 폈다.

밖은 춥고, 지하철역엔 사람들이 많으니 역 안에서 하나라도 더 많이 팔아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그 힘든 길을 내려왔을 것이다.



허가된 매점이 아닌 이상 지하철역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는 불법이다.

쾌적한 지하철 이용을 방해하는 불법 노점이기 때문에 지하철에서는 항상 저런 사람들의 물건을 사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장사를 하는 이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불법 노점상 물건을 사지 말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천 원짜리 김밥은 별 볼일 없었다.



햄 한 조각 없이 몇 개에만 드문드문 맛살이 박혀 있을 뿐, 단무지, 당근, 시금치가 전부인 정말 단촐한 김밥이다.

그런데 차곡차곡 알차게 일회용 접시에 가득 담겨 랩으로 포장되어 있는 김밥을 이쑤시개에 찍어 하나 하나씩 집어 먹을때마다

'방금 싼 거라 맛있어요'라며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밝은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때문인지, 단무지, 시금치, 당근이 전부인 단촐한 김밥인데도 불구하고, 묘한 감상에 젖어 계속 집어먹게 되었다.




별 볼일 없는 싸구려 김밥.




김밥 전문점에 가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속으로 꽉 찬 김밥이 많을 테고, 공공장소에서 노점으로 파는 이건 비위생적일 수도 있다.

이성적인 논리로 따지면 이런 열등한 김밥을 굳이 배도 고프지 않았던 내가 사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엉금엉금 걷는 그 할머니의 김밥과 떡으로 가득 찬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다.

지하철엔 앵벌이, 껌팔이, 소경 등 불쌍한 척 연기로 동정을 구하며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고난의 굽은 허리, 피부에 깊이 박힌 주름까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저 김밥이 할머니가 싼 게 아니라 공장에서 떼 온것이면 또 어때.

단돈 이천원에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따뜻한 김밥이었다. // 200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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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구신 2009/12/02 02:30 #

    알바하는 편의점앞에 만두파는 할머니가 장사하시고 계시는데 종종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가시곤 합니다.. 밤 1시까지 하시기에 따뜻한 꿀물 하나 사서 드리곤했는데 알고봤더니 저말고도 편의점 알바생들이 할머니가 보이시면 종종 따뜻한 먹을거리를 사준다고 하더라구요. 조금 다른이야기였지만 괜시리 생각나네요
  • Ryunan 2009/12/03 02:20 #

    예전 제가 편의점 일할 때 항상 와서 끼니로 라면을 사 드시던 국화빵 구워 파는 청각장애 아줌마가 생각이 나네요.
    저도 구신님의 댓글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 원똘 2009/12/02 03:16 #

    뒤숭숭한 일들만 보이는 요즘 별것 아닌것 같아도 참 보기좋고 읽기 좋은 글입니다.
    ^_^b
  • Ryunan 2009/12/03 02:21 #

    별 재주없는 글이었는데... 기분좋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마검君 2009/12/02 10:25 #

    훈훈하면서도 가슴뜨거운 글 잘 읽고 갑니다.
  • Ryunan 2009/12/03 02:21 #

    네, 고맙습니다^^
  • 斑鳩 2009/12/02 11:00 #

    이런건 손맛이라도 가득해서 나도 가끔가다가 사먹게 됨. 특히 떡.
  • Ryunan 2009/12/03 02:21 #

    이런 데서 파는 떡 맛있어. 김밥 같은 것도 좋긴 하지만 여름에는 쉴 염려 때문에 조금 꺼려지게 되지.
  • 낭만곰뎅 2009/12/02 11:08 #

    아... 저할무니를 아시는군요 ㅠ_ㅠ..
  • Ryunan 2009/12/03 02:21 #

    아뇨;; 모르는 할무니입니다 ㅠㅠ
  • 강우 2009/12/02 11:33 #

    행동과 마음이란 항상 이성과 논리에만 따르는 법이 아니지요 :)
  • Ryunan 2009/12/03 02:22 #

    그렇지요. 이성만큼이나 감성적인 마음을 갖고 사는 것도 세상 즐겁게 사는 방법입니다.
  • 늄늄시아 2009/12/02 11:52 #

    류난님의 따듯한 마음씨.. ;ㅅ;
  • Ryunan 2009/12/03 02:22 #

    전 차가운 도시남자라...:$
  • 블루 2009/12/02 23:02 #

    국가가 해야할일은 저런분들이 최소한의 생활은 할수 있도록 보장하는것 이겠지요.
  • Ryunan 2009/12/03 02:22 #

    그렇지요. 노력은 하고 있다지만 구석구석 손길이 뻗지 않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 임프몬 2013/05/14 23:19 # 삭제

    방금 부산 경대역근처에서 김밥 할머니.보고 감색하다가 이렇게 들립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도네요.. 오늘은 무심코 지나쳣지만 다음에는 저도 무거운짐 조금이나마 들어두리고 싶네요 ㅠㅡㅠ
  • Ryunan 2013/05/15 23:07 #

    게다가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부담없이 구매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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