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2일차, 이 날은 진주로 내려갔다. 정확히는 진주가 아니라 진주 옆에 있는 지리산 쪽이지만 펜션을 하고 있는 동생
재민이를 만나기 위해 내려간 목적이 컸다. 예전에 얘가 군 복무하던 시절에 알게 되었고 (정확히 그 전에 존재를 알게 된 것은
dcinside에서였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집에서 외박 때 몇 번 자고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진주까지 찾아가게 된 것 같다^^
진주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식객 27권에도 소개된 '진주냉면' 이었다. 그림만 보면서 대체 무슨
맛일까... 하는 궁금증에 휩싸여 있었는데 진주를 내려가는 김에 이 진주냉면을 맛볼 소중한(?) 기회를 마침내 얻을 수 있었다.

원래는 오전 11시쯤에 대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 가는 버스를 타고 진주로 혼자 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이 틀어져버린 것이 아침에 전날 신세를 진 ahgoo의 집을 나와 진주터미널을 가기 위해 동부시외버스터미널로 가니
1시 반 이전까지의 모든 진주행 버스가 매진되어 버렸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꼼짝없이 3시간을 버리게 된 셈...
그래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1시 반이라도 좋으니 그 차를 타고 내려가야하나...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자기 차를 타고
내려가자고 제안, 결국 ahgoo의 자가용을 타고 진주까지 내려가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나를 데려다주려고
대전에서 160km가 넘게 떨어진 진주까지 나를 특등석에 모시고 데려다준 셈인데... 진짜 니가 내 구세주이자 키다리 아저씨다!
대전 - 통영 고속도로였나... 이 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쌩쌩 밟으며 진주로 내려갔다. 1시 약간 넘어서 진주시내에 도착.
진주터미널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YJM(재민)이를 만날 수 있었다. 군인 시절일 때는 서울에서 여러 번 보긴 했는데
전역을 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만나보는 것은 처음이라 머리를 기르고 평상복을 입은 모습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지난번 전역하기 전 말년휴가 때 한 번 보고 처음 보는데 진주 내려가서 요요현상으로 살이 엄청나게 쪘다고 하더니만
약을 팔았다...ㅡㅡ;; 휴가 때 비해 살이 확실히 찌긴 했는데 엄청나게 찐 게 아니라 예전 휴가때가 너무 빼빼 말라서 지금은
딱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오른 모습. 무슨 100kg이 넘어서 110kg까지 폭풍요요가 왔다 하더니만 나한테 약을 팔았군...ㅡㅡ+++
어쨌든 대전에서 같이 내려온 ahgoo와 함께 셋이서 차를 타고 제일 먼저 목적지인 식객에도 소개된 진주냉면집을 찾아갔다.
...가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진주냉면 '하연옥'은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에 있었다. 차 없었음 큰일날 뻔했네;;;

체인점 없이 직영점 두 군데만을 운영한다는 진주냉면을 대표하는 식객에도 소개된 맛집 '진주냉면 전문점 하연옥'
최근에 건물을 새로 지었는지 3층짜리 깔끔한 건물이었다. 만화책에서 보던 다소 허름한 외관의 평범한 식당과는 달랐다.
차를 근처에 대려 했는데 점심시간대를 약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차를 댈 수가 없을 정도로 주차된 차량이 많아서
식당에서 한참 떨어진 아파트단지 쪽에 차를 대놓고 조금 걸어와야 했다. 그 정도로 진주냉면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 27권 '진주냉면' 편에 나온 황덕이 할머니. 할머니 오른쪽에 서 있는 아저씨도 만화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하연옥 1층에 흑백으로 저 분들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다. 오랜 전통의 진주냉면의 명맥을 잇는 산 증인이라고 책에 써 있었다.
만화책에 소개되었을 때 연세가 82세라 하였으니 지금은 84세시구나...!!


식객에까지 소개된 맛집이라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갔었는데, 맙소사... 대책 없는 수준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3층이나 되는 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테이블이 꽉 차서 입구에서 은행처럼 번호표를 나눠주고
번호표에 적힌 번호가 불러지면 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방식. 우리가 38번 번호를 받았는데 그 때는 6번인가 7번
손님이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배고 고팠거니와 대전에서 일부러 내려온 ahgoo눈치가 솔직히... 좀 많이 보였던 순간이었다...ㅡㅜ
진주냉면을 먹으러 오자는 것은 순전히 식객을 보고 궁금증에 빠진 내 욕심에서인데, 내 욕심으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배고픈 걸
참고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영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면서 의자에 앉아있었다.

기념으로 하나 가져온 하연옥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는 팜플렛. 진주의 토속음식인 진주냉면과 비빔밥, 육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음식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매장이 커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손님들이 빨리 빠져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한 1시간 이상은 줄을 서야겠다...하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30분만에 자리가 났다.


메뉴판. 주저할 것 없이 식객 만화책에 그대로 나온 진주물냉면을 주문했다.
고기나 동치미 육수를 쓰지 않고 해산물을 이용하여 육수를 내어 그 맛이 독특하다는 진주냉면을 맛보려면 물냉면을 먹어야 한다.
음식 가격대는 7~8천원 수준으로 서울의 냉면 전문점의 냉면 한 그릇과 비교하자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냉면 위에 올라간다는 육전도 따로 메뉴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좀 세서 그것까지 시킬 엄두는 나지 않았다...^^;;
3층까지 있는 매장 중 2층으로 올라가서 다행히도 창가 쪽 외진 자리를 안내받았는데 정말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장이 비교적 쾌적하고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가 넓어서 그렇게까지 시끄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많아도 직원들이 싹싹하고 친절한 편이라 보통 사람 많은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나 불쾌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것...

가장 기본으로 나온 반찬인 무생채. 서울에서 먹는 심심한 맛의 무생채에 비해 톡 쏘는 시큼한 맛과 간이 강하게 느껴졌다.
무채 하나로 모든 건 판단할 수 없지만... 지방을 내려가면 다른 음식보다도 김치 혹은 장아찌류를 먹었을 때 그 지역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 당장 김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에서 먹는 것, 전라도의 것, 경상도의 것이 다 제각각이니까...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금방 나온 진주냉면. 만화책에 나온 그 진주냉면을 이렇게 실제로 접할 수 있다니, 영광이었다!
책으로만 보던 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니 진주에 내려온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일단 열심히 카메라를 들어대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냉면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생소한 외형이라 같이 간 친구들도 그 모습이 조금 낯설었나보다.
일단 국물 색깔이 다른 냉면에 비해 상당히 짙었고 배가 육회에 들어가는 배 마냥 채썰어 들어가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만화책에도 나온 것이지만 냉면 고명으로 고기를 밀가루옷 + 계란을 입혀 지져낸 고기전(육전)이 채썰어 올라가있다는 것.
계란도 그냥 계란 삶은 것만 들어간 것이 아닌 삶은 계란 위에 실고추, 그리고 계란지단을 얹어냈다는 것이 매우 특이했다.
같이 진주에 온 ahgoo가 말하기를 '마치 명절 음식 남은 걸 모아서 냉면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아...' 라는데 그 말이 맞는듯.
물론 부정적인 뜻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외형만으로 본 진주냉면의 첫 인상은 이렇게 생소하고 또 신기했다.

일단 면을 먹기전에 대체 해물 육수 베이스의 냉면 국물의 맛은 어떤지 한 번 마셔보았다. 음... 음.......음...?!
뭐랄까... 굉장히 그동안 단 한 번도 체험해보지 않은 상당히 독특한 국물. 일반적인 물냉면의 육수와는 다르게 간장 맛과 동시에
해물 특유의 비릿한 향이 올라오면서 상당히 진한 국물이 인상적이면서도 굉장히 생소하게 다가왔다. 나쁜 의미는 아니지마는
한 번도 체험해보지 않은 맛이라 굉장히 생소하다고 해야 할까, 뭐라 맛의 판단이 서지 않는 그런 기분...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그것이 나쁜 맛은 아니어서 계속 국물을 먹으면서 먹게 되었는데 면도 일반 냉면의 가느다란 면이 아닌 상당히 굵은 면발이라
또 신기했고... 여튼 뭐라 설명하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맛에 놀라 계속 먹고 또 먹으면서 맛을 머릿속에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설명하기가 애매한 복잡한 맛을 지니고 있어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는 내 표현력의 한계가 원망스러울 정도 ㅠㅠ

식객에 소개된 진주냉면은 우리나라에서 평양냉면과 동시에 2대 냉면으로 인정을 받는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냉면이라는데
해물 육수의 생소한 국물맛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히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고 한다. 실제로 만화책 내에서도 이 냉면이
맛있다! 라고 소개되지 않았고 첫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이 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 라고 쓰여
단도직입적으로 맛있다! 라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피한 대목을 찾을 수 있는데 직접 먹어보고서야 그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맛이 있는건지, 아니면 없는건지 판단 기준이 없어 생소하게 느껴졌던 면이었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자꾸만 그 냉면의 독특한
비린맛이 확 올라오는 육수가 계속 생각나는 것을 보니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냉면만은 확실하다.
나중에 계산을 하고 나올 때 카운터에 있는 분이 말하기를'우리 집 냉면은 한 번 먹으면 맛을 모른다. 적어도 세 번 이상
와서 먹어봐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라고 하던데 그 말의 의미가 뭔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먹어봐야 알 것 같다.
진주냉면. 만화책을 보면서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냉면에 대한 궁금증이 풀려 한편으로는 굉장히 개운하면서도 또 굉장히
긴 뒷맛이 남아 묘하게 여운을 남겼던 특이했던 체험. 서울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와 부산의 극히 일부에서만
이 냉면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언제 다시 기회가 되어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이 진주냉면집을 또 한 번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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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진주에서 남강유등축제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천안 흥타령 축제부터 시작해서 남강유등축제까지...
어째 이번 여행 타이밍에는 축제를 볼 기회가 많은 것 같아 복을 받은 것 같았다. 축제에 관련된 사진은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 2011.10.5 RYUTOPIA 2011

덧글
...........육군에게 논산이 그렇듯이 저한테는 진주가 역시 생각하기 싫은 곳이네요. 냉면은 많이 끌리지만ㅠ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이런 기분도 사라지겠지요.
한번도 못먹었던 귀한 진주냉면도 먹고 좋았지 뭐 ㅋㅋ
진주냉면은.. 음 정말 다시 먹어봐야 이맛이 어떤가 알수 있을것같음.
한번 먹고나서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안되는 음식은 이게 처음인것 같아...
누텔라 2통입니다 고객님
한국인의 밥상 냉면 편에도 저 할머니 나오셨어요 ㅎㅎ
진짜 재밌게 봤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얼마나 대단한지!
냉면은 웬지 니 입맛에도 맞을 것 같네. 다만 냉면 위에 올라간 육전은 고기니까 빠지는 게 좋을듯 싶군.
진주와 쌍대를 이루는 냉면으론 사천의 재건냉면이 있습니다.
면이나 고명의 구성은 거의 비슷하지만 육수가 완전히 다르지요. -> 재건은 일반적인 동치미+소고기 육수
덕분에 진주와 사천을 놔두고도 호불호가 상당히 갈립니다.
그리고 남쪽엔 진주, 북쪽엔 평양이란 칭호로 2대 냉면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사실 저런 칭호가 나온게 최근의 일이라서요...(....)
덤으로 하나 알려드리자면... 진주냉면의 첫 개점 당시 칭호는 '부산냉면' 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정말 가서 한번 먹어보고 싶게 생겼군요!
저 류난님덕분에(?) 난생처음 동인천까지가서 닭강정부터 옹기병까지 모두 정복하고 왔네요:)
한시간반은 걸리는데 또 가고 싶습니다;; 책임지세요. ㅠㅠㅋㅋ
어이쿠 동인천 다녀오셨군요 ㅋㅋ 닭강정에 옹기병이라면 제대로 투어 하셨네요 맛은 좋으셨나요^^?
원보는.. 다른거 다 먹어보고 마지막에 갔는데 '아까운 배(?)를 엉뚱한 걸로 채워버리고 여길 내가 이제 오다니ㅠㅠ'
싶을정도로 맛있더군요. 정말 최고였어요~ ^^
닭강정은 포장이 되고 데워 먹어도 맛있으니 다음에는 원보부터 먼저 가세요 ㅎㅎ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