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뚝뚝하게 음식을 던지는 아줌마들의 불친절이 불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떨 땐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고, 그리고 또 지나친 불친절은 마음이 불편하고...
딱 돈을 낸 만큼의 적당한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고 적당한 시간동안 앉아서 음식을 먹고 나갈 수 있는 가게가 없을까?
라는 고민을 밖에서 식사를 할 땐 항상 하고 있는 편인데, 간만에 그런 느낌이 제대로 꽂혔던 가게가 있어
지금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해 보려 합니다. 뭐 꽤 예전부터 유명했던 거라 아실 수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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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내부를 볼 수 없는 이 독특한 분위기의 가게는, 일본식 쇠고기 덮밥인 규동을 파는 식당으로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조그마한 동네 식당입니다.

일단 이 곳은 무조건 안으로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 앞에는 현관 초인종처럼 벨이 있는데, 그 벨을 누르면 안에서 '몇분이세요?' 라고 직원이 물어보고
찾아온 인원수를 이야기하면 직원이 내부 테이블 준비를 마친 뒤 문을 열어주는, 마치 식당을 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가정집을 손님으로 방문하는 것 같은' 독특한 시스템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더군요.

두 명이 방문했는데, 저희도 이 곳의 룰을 따라 바깥에서 벨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절반이 손님이 앉을 수 있는 바(Bar) 식의 테이블인데, 약 10명 정도 앉으면 자리가 꽉 찰 정도.
내부가 협소하기 때문에 의자 바로 뒤 벽에는 가방이나 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옷걸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컵과 반찬, 반찬그릇, 식기류 등이 놓여져 있어 일본 규동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식사를 하는 내내 음식주문, 추가요청, 계산 이외에는 손님에게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손님도 일 하는 직원에게 말을 건네진 않고요. 일종의 작은 가게만의 룰인 것 같군요.
다만 사람에 따라 이 분위기가 굉장히 살풍경하고 인정 하나도 없는 싸늘한 분위기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어찌보면 굉장히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라 좋아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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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게 입장 전 입구의 인터폰을 누르고 인원을 얘기해주면 안에서 직원이 열어서 안내해준다.
2. 내부가 협소해서 2인까지의 손님만 받고 3인 이상은 단체손님으로 정하고 있다.
3. 내부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
4.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소리지를 수 없다.
5. 직원은 손님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사근사근한 친절함은 기대하지 마라.
6. 그래도 따뜻한 밥이 있고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으면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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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굉장히 불친절하고 인정머리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막상 들어오면 또 그렇진 않습니다.
살풍경한 식당이라기보다는 그냥 여기는 원래 조용한 곳이구나, 라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서
자동적으로 목소리가 작아지고 조용한 특유의 이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게 되더군요.
처음 들어왔을 때 느낌이 딱 그랬거든요. '이 곳은 혼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곳이다'

규동도 곱배기라던가 그런 옵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규동 + 반숙계란 세트가 이 곳에서 파는 것의 전부.

단 여기는 술집이 아니기 때문에 술은 한 사람당 한 잔(한 병)까지만 판매합니다.
마치 일본 만화 '심야식당'에서 나오는 술을 최대 세 병까지만 파는 규칙을 보는 것 같습니다.

냉동실에 넣었다 꺼내놓은 듯 차갑게 식은 컵이 같이 나옵니다.


초생강은 괜찮은데, 깍두기는 제 입맛에는 약간 안 맞아서 그냥 첫 접시만.

된장국은 더 달라고 하면 담아줍니다.

반숙계란은 규동이 나오면 같이 넣어서 먹어도 되고 따로 먹어도 되고 원하는 대로...

밥은 밥통에 담아놓아 언제든 꺼낼 수 있지만, 주문을 받은 즉시 규동 안에 들어가는 쇠고기를 조리하기 때문에
음식 나오는 데 시간은 좀 걸리는 편입니다. 일본 규동처럼 바로바로 나오는 게 아니더군요.
다만 주방장이 안에서 고기를 볶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게의 대표메뉴이자 유일한 메뉴인 쇠고기 덮밥, 규동(5500원)
양은 요시노야, 스키야 계열의 일본 규동집에서 나오는 보통 사이즈 수준.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규동을 먹는 방법은 비빔밥처럼 비벼서 먹는 방법도 있고, 그냥 밥과 고기를 따로 먹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맛을 즐기기 위해선 밥과 고기를 비비지 않고 따로따로 즐기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한국의 '불고기' 스타일로 어레인지하여 단맛을 높이고 야채를 많이 넣어 사실 '규동'이라기보다는 그냥
'잘 만든 불고기덮밥' 이라는 느낌이 많이 강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먹은 규동은 식당에서나 편의점에서나 전부 그랬어요.
적어도 여기 규동은 제가 여태까지 먹었던 것 중에서는 가장 일본의 규동에 가까운 맛이었습니다.
단맛이 강한 편도 아니고, 양파 이외의 야채는 들어가지 않았으며, 고기도 일본 규동에 들어가는 고기와 비슷한 식감.
굉장히 대단한 것도 아니고 별 것 아니기도 한데, 묘하게 일본여행할 때 먹었던 맛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좀 편안한 가정식을 먹는 기분이 느껴지는 그런 맛입니다. 반숙계란도 거의 비리지 않았고요.
게다가 일행 한 명과 같이 갔는데,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게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식사하는 동안에는 정말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자기 식사만 했습니다.
직접 가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이 가게의 분위기가 그래서 진짜 식사만 조용히 해야할 것 같은 느낌.
불편한 분위기라기보다는 그냥 '원래 여기는 이런 곳이야. 편하게 먹는 것만 집중해' 라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빈 접시는 직원이 와서 치워주고 뒷 사람이 있을 땐 빨리 일어나주는 게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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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제가 이상적으로 꼭 꿈꿨던 식당인 '심야식당'과 비슷하면서도 또 많이 달랐던 곳.
심야식당이 마스터(주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훈훈하고 따뜻한 정이 많이 오가는 그런 마실 같은 분위기라면
이 곳은 내부는 심야식당과 비슷하지만, 그런 따뜻한 정이 사람들과의 대화나 분위기에서가 절대 아닌
오직 음식에서만 느껴졌던 곳입니다. 세 명의 직원들이 일하는데, 식사하는 내내 직원들도 각자 일의 역할만 분담할 뿐
정말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한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는 분위기가 참 독특하다... 라고 느꼈고요.
어쩐지 삭막하게 보이는 분위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지 않게,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컨셉과 조용한 분위기가, 여태까지 우리나라 식당에서 보았던 여럿이 와서 왁자지껄 떠드는 것과 반대로
혼자 온 사람들도 아무 부담없이 식사를 하고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쓴 배려가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확실히 여기는 여럿이 올 식당이 아닙니다. 혼자 와서 조용히 음식을 즐기고 나가는 그런 곳이에요.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절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편이지요.
여기는 그런 여럿이 아닌 혼자, 개인을 위한 아지트.
여러명의 손님은 거절한다.
친절함도 없고 대화도 없다.
하지만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따끈한 밥을 준비한다.
독특한 분위기와 컨셉을 갖고있는 서울대입구의 규동 전문점 '지구당'
여러분은 이 식당이 어떻게 보입니까? 혼자만을 위한 편안한 곳이 될 것 같나요, 아니면 지나친 규칙에 얽매여
식사 하나도 마음대로 못 하는 불편한 곳일 것 같나요? 그건 여러분의 판단 기준에 따를 것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이 독특한 가게의 인상이 꽤 오랫동안 머리에 남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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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식사를 하고 서울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주로 장년층 관객들이 좌석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영화 끝날 때 즈음 이곳저곳에서 코 훌쩍이면서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가 많이 나오더군요.
저도 보다가 울컥 올라와서 정말 참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고요. 억지로 견디긴 했지만...
억지스러운 감동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노부부의 76년간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감동과 아픔.
때론 과도한 교훈과 감동을 담기 위한 픽션보다, 사람의 삶 속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논픽션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더 진한 여운을 남겨줄 때가 있습니다.
// 2014. 12. 25

덧글
사람이 그리울 땐 멀리해야 할 가게같습니다.
음식보다도 가게 내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서 왜 돈 내고 음식 먹는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나 하며
약간의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뭐 개개인의 취향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추억이 어린 식당입니다. 어쩌다 밥때를 놓쳐버리면 저기서 늦은 저녁을 먹고 집에 간 적이 몇 번 있었지요.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1월 5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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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