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게 이름은 '동경우동'. 간판명만 보고 바로 직감하셨겠지만 '우동'을 메인으로 판매하는 식당입니다.

언제부터 걸려 있는 현판인지 모르겠지만, 현판의 서체만 봐도 꽤 오래 된 가게 이미지가 느껴지는데요,
동경우동은 1986년 오픈하여 현재 30년 넘게 을지로에서 현역으로 영업하고 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를 가진 우동 전문점이라고 합니다.

출입문 옆 창가 쪽은 일렬로 쭉 앉아 식사할 수 있는 1인 테이블이 있는데
이 테이블에 앉아 혼자 식사하러 온 분도 꽤 되더군요. 근처에 인쇄소가 많이 몰려있다보니
정장 입은 직장인들은 적은 편입니다. 그 사람들은 한 정거장 건너 을지로로 가야 많이 볼 수 있지요.

'을지로 동경우동' 이란 이름으로 신문에 소개된 것을 잘라 스크랩한 뒤 액자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글씨체에서 오래 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군요. 메뉴판은 옛날에 만들어놓고 가격만 변경해가는 듯.
판매하는 메뉴가 꽤 저렴합니다. 제일 가격이 저렴한 기본 우동이 3,500원이고
가장 가격이 비싼 우동카레콤비도 5,000원. 주류는 유일하게 '정종'을 팔고 있는데 한 잔에 3,000원.
지인 중 누군가 가게 이름이 '동경우동' 이니 판매하는 술도 '정종'일 거라고 하던데,
그럼 가게 이름이 '도쿄우동' 이었으면 판매하는 술은 '사케'가 되었으려나...;;
뭘 먹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배가 많이 고팠으므로 두 가지 다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우동카레콤비를 선택했습니다.



총 세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단무지 두 조각와 오이지 두 조각.
오이는 일단 생긴 건 오이지처럼 생겼는데, 오이지와 오이피클의 중간 정도? 되는 맛이더군요.

순대국이나 설렁탕집에서 나오는 진한 양념이 아닌 돈까스집에 나올 법한 깍두기입니다.

카레와 우동을 단품으로 시켰을 때에 비해 양이 적은 대신 두 가지 메뉴가 한꺼번에 나와
혼자 방문해도 부담없이 카레와 우동, 그리고 우동 위 어묵을 동시에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카레라이스가 먼저 나왔습니다만, 이 비주얼... 아무리 봐도 너무 모범적인 오뚜기 카레 비주얼인데(...)

밥에 비해 카레의 양이 많아 퍽퍽하진 않게 비벼지는 게 좋군요. (카레 많은 거 좋아함)
카레 건더기로는 돼지고기 약간과 감자, 호박, 당근이 들어가긴 했지만 건더기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집에서 만들어먹는 오뚜기 카레의 맛이라 뭐라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정식 오뚜기 카레 그 자체입니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딱 봐도 상상되는 카레의 맛과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똑같아 오히려 더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까...;;

양은 역시 1인분으로 나오는 우동 단품메뉴의 양보다 다소 적습니다만 카레랑 같이 먹기에 딱 좋은 분량.
국물 위를 가득 덮고있는 채썬 파와 튀김가루, 김 등의 고명 덕에 카레보다 더 먹음직스러워보이더군요.
우동카레콤비는 이렇게 카레 + 우동 + 어묵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꽤 경제적인(?) 메뉴입니다.

정통 일본식 우동...이라기보다는 그걸 처음 들여와서 변형한 90년대 감성의 한국식 우동.
면발이 아주 탱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지 않고 적당히 후후 불어가며 먹기에 좋은 익숙한 식감과 맛.

별 거 아니긴 한데 의외로 우동 위에 얹어진 고명들이 꽤 맛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카레라이스랑 우동 다 합쳐 가장 맛있었던 건 건더기 마무리로 마신 우동국물이었어요.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데서 흔히 맛볼법한 친숙한 맛의 우동(국물은 훨씬 맛있습니다)에서
여긴 엄청 맛있다! 라는 가게만의 특출난 개성이 있다기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가정에서 먹는 카레와 밖에서 간편하게 후딱 먹을 수 있는 우동, 두 가지를 적절히 잘 조합한 것 같았어요.
일부러 이 우동이나 카레를 맛보기 위해 먼 데서 찾아와 먹는 건 비추.
다만 근처에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시간대에 와서 5,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우동이나 카레를 시켜
한 그릇 든든하게 후딱 먹고 가면 되는, 그런 분위기가 강했던 곳입니다.
묘하게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의 8~90년대 한국의 일본음식 전문점을 보는 듯한 이미지도 느껴졌고요.
지금이야 현지와 동일한 맛을 내는 우동, 카레 등의 전문점이 많아지긴 했지만
80년대, 아니 제가 기억하는 90년대만 해도 일본식 카레나 우동은 꽤 생소한 메뉴였고
그나마 간접적으로 느껴보려면 이런 분위기의 가게에 와서 먹어보는 것 정도였으니까요.

이 가게를 다시 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ㅋㅋ
특출난 음식 맛보다는 8~90년대 한국식당의 '일본음식'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재미있었습니다.
. . . . . .

2017. 8. 17 // by RYU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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