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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7. 가을의 당일치기 강릉여행 (6) 세계최조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 오죽헌(烏竹軒)-1 by Ryunan

= 가을의 당일치기 강릉여행 =

(6) 세계최조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 오죽헌(烏竹軒)-1

. . . . . .

강릉역 근처 버스 정류장. 여기서 오죽헌으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엔 이렇게 실시간으로 버스 도착 안내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죽헌으로 가는 버스는 300번 또는 202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특히 300번은 강릉에서 가장 촘촘한 배차간격으로 다니는 버스로 주문진에서 출발, 강릉시내를 거쳐 안목항까지 운행하는
광역버스 성격도 동시에 띠고 있는 노선으로 강릉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각표 없이 그냥 기다려 타도 되는 버스.
그 외의 다른 시내버스는 배차간격이 꽤 길기 때문에 버스가 출발하는 시각표를 확인하고 타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버스정류장에는 각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예상시각 안내를 표기해주고 있는데,
버스 노선은 많지만 하루에 한 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도 있어 시각표를 잘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시내버스가 배차 20분을 넘어가는 게 별로 없는 서울에서는 조금 생소한 부분이지만 지방에선 익숙한 풍경.
그래서 외지인들이 지방 여행을 올 땐 버스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침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300번이 아닌 202번 버스가 들어왔다.
내가 노선을 확인한 건 300번이었는데 202번도 오죽헌을 간다고 하니 그냥 이 버스 타 보지 뭐...


강릉 시내버스 요금은 현금 승차시 1,300원으로 서울과 동일하지만 교통카드 사용시엔 요금이 100원이 아닌
통 크게 10% 할인이 적용되어 1,170원에 탈 수 있다. 서울보다 30원, 경기도보다 80원 싸니 뭔가 이득보는 기분.
버스끼리의 무료환승은 1회에 한해 하차 태그 후 40분 이내 다른 노선의 버스 환승시 적용된다고 한다.
캐시비 교통카드가 메인이긴 하지만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티머니도 사용 가능하며 후불 교통카드도 사용 가능.


버스가 오죽헌으로 가긴 하지만, 바로 직행하는 게 아닌 강릉시외버스 터미널을 한 번 돌았다 가는 거라
조금 우회하여 시간이 걸렸다. 제대로 노선을 확인하지 않아 이거 잘못탄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약간 했는데
다행히 시외버스 터미널만 한 번 우회하고는 바로 오죽헌 방향으로 직행해서 금방 안도할 수 있었다.


오죽헌 정류장에 도착.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약 500m를 걸어가면 오죽헌 입구가 나온다.


오죽헌 정류장 맞은편에는 넓은 들판과 함께 작은 호수 하나가 있는데 '경포생태저류지' 라고 한다.
탁 트인 들판으로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하늘 또한 맑아 잠시 이 곳에 서서 풍경을 즐긴 후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정류장 뒷편 생태저류지에는 사진과 같이 꽤 쾌적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곳곳에 코스모스가 만발한 모습이 아, 이제 완연한 가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변화가 극심해져 요새는 가을을 느낄 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이런 꽃들이 가을 분위기를 물씬 내 주고 있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입구. '세계 최초의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 라는 하단 문구가 눈에 띈다.


오죽헌 안으로 들어가는 길. 중년 부부로 보이는 분들께서 다정하게 팔짱 끼고 내 앞을 걷고 있었다.


오죽헌은 강릉을 대표하는 시내에서 가까운 접근성 좋은 관광지니만큼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은 편인데,
넓은 주차장에 이렇게 단체 관광버스가 죽 늘어서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마 당일치기 강릉관광 상품으로 놀러 온 사람들로 보이는 중, 장년층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오죽헌 기념공원 입구. 저 문부터는 유료 입장 구간이라 입장권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강릉 오죽헌 박물관 설명 및 공원 안내도.


입장 요금은 성인 3,000원. 그냥저냥 무난한 가격의 요금이라 생각되는데 각종 할인 혜택이 꽤 많다.
일단 강릉시민의 경우 일요일에는 무료 입장, 그 외의 요일엔 50% 할인이 적용되며
철도를 이용하여 찾아온 뒤 철도 승차권을 제시할 경우에도 50% 할인이 적용된다.
12월, KTX 강릉역이 개통한 뒤 철도를 타고 강릉에 왔다면 승차권을 버리지 말고 반드시 보관해놓아야 할 듯.


우리는 딱히 할인받을 만한 수단이 없었으므로 그냥 성인 세 명 정규 요금으로 입장권을 끊었다.
그런데 3명 입장권을 각각 따로 끊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 장에 전부 표시해줄 거라곤 생각 안 했지...;;


입장권을 낸 뒤 오죽헌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중.


입구 근처에 관리사무소 건물이 있는데, 이 곳에서 관광 팜플렛 등을 가져갈 수 있다.


또한 관리사무소 출입문 근처엔 사진과 같이 사물함이 운영되고 있는데 무료로 짐을 맡기는 게 가능하니
가방 등 무거운 짐이 있다면 반드시 이 사물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큰 캐리어도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넓은 게 특징.
세 명의 캐리어와 점퍼(날씨가 좀 더워서)를 한 곳에 다 몰아넣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폭 또한 매우 깊었다.


별도의 동전을 넣지 않아도 물건 보관이 가능하니 코인 락커가 아닌 그냥 사물함.


QR코드가 찍혀있는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한글 팜플렛도 한 부 챙겼다.


얼마 걷지않아 발견한 것은 오죽헌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의 동상.
어렸을 적 착각한 것 중 하나로 이 분의 이름이 '이율곡'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율곡'은 이름이 아닌 호로
실제 이름은 이이(李珥)다. 이이(李珥 1536 ~ 1584)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신사임당의 아들이며
우리에게는 정말 너무나도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바로 오천원권 화폐에 들어간 인물이 율곡 이이이기 때문.


'見得思義(견득사의 - 볼견, 얻을득, 생각사. 옳을의) - 이득을 보거든 옳은것인가를 생각하라'


오죽헌 입구에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는 것을 봤는데,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중학생들이었다.
아마 어느 학교에서 교사를 대동하여 현장학습을 나온 모양인데, 양산을 쓰고 계신 선생님께서 이 곳에 서서
학생들에게 오죽헌이 무엇인지, 내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뭐 다 그렇지만 설명 안 듣는 애들도 있고 시끌벅적하긴 한데 의외로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 곳에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가...ㅋㅋ 강릉 어디를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죽헌(烏竹軒)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양식의 건물로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어 한국 주택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또한 현재 사용되는 화폐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구 오천원권 화폐 뒷면에 등장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물론 시중에서 거의 사라져 그렇지 이 화폐 또한 유통 및 사용이 일단 가능하다고는 하다.


'스스로 깨우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오죽헌 자경문(自警文)


오죽헌 곳곳에도 율곡제를 알리는 청사초롱이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넓은 광장과 함께 배경에는 옛날 오천원권 뒷면에서 봤던 친숙한 오죽헌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가을이긴 하지만 아직 단풍이 완전히 진행되지 않아 조금 푸르렀던 나무들.


조선 중종 때 건축된 오죽헌은 현재 남아있는 한국의 건축물 중 주택으로선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이라 한다.


신사임당, 그리고 그의 아들 이이가 태어난 곳 오죽헌.
본래 이이의 본가는 파주에 있었고 집은 한양에 있었지만 그가 이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난 이유는
'남귀여가혼' 이라고 하는 남성이 여성과 결혼하여 여성의 집에 가 아이를 낳는 당시의 풍습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이의 외가댁 사랑채 건물. 오죽헌의 본채는 지금은 소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채 기둥에 이렇게 글씨가 붙어 있는데, 조선의 유명한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한다.
상태가 양호한 것을 보니 아마 원본은 따로 보존하고 있고 복원해놓은 것이 아닐까 싶지만...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 된 집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낡지 않고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아까 오죽헌 입구에서 선생님 인솔하게 따라다니던 중학생 단체가 이 쪽으로 우르르~
오죽헌에서 구입한 듯한 수묵화가 그려진 양산을 들고 있는 선생님은 이 곳에서도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셨다.
애들 엄청 시끌시끌하고 딴짓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뭐랄까 다들 말은 잘 듣는 것 같다...ㅋㅋ


옛날에는 이 집이 어떤 분위기였을지 마당에 서서 당시의 분위기를 혼자 상상해본다.


사랑채 기둥에 붙은 추사 김정희의 문구는 '구옥의 주련' 이라고 하여
역시 예상한 대로 필적을 판각 복원한 것. 명나라 진계유의 암서유사에 나오는 시구를 쓴 것이라 한다.


한창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죄송합니다만, 촬영 때문에 잠깐만 비켜주실 수 있으신가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더니 카메라맨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라고 하기엔 인원이 너무 적었는데 무슨 잡지나 홍보물 촬영이라도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겠구나... 라고 여겼는데 사랑채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고 순간 헉...!


네... 박경림입니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예전만큼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긴 하지만 한때 방송계에서 큰 활약을 했던 분.
얼굴은 예전 방송활동 할 때와 완전히 똑같았고 실물을 직접 보니 연예인이라기보다는 그냥 막내이모 같은 느낌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촬영 마칠때까지 기다렸다 조심히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저, 죄송한데 사진 좀 같이 찍어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어보니 박경림이 직접 혼쾌히 얼마든지 좋다고 해 주셨다.
블로그에 따로 올리진 않지만 우리 일행과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오죽헌에 온 것인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던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히 사람이 상냥하고 친절하셔서 엄청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이내 우리 말고 다른 관광객들도 박경림을 알아차리고 같이 사진 찍자 요청하신 분들이 몇 있었는데
전혀 싫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부탁에 다 응해주는 걸 보니 연예인이기 전에 원래 사람이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박경림과의 사진 촬영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진 채 다음으로 이동.


다른 건물에 비해 좀 화려해 보이는 이 건물은 문성사라고 한다.


문성사는 오래 된 건물이 아닌 1976년 오죽헌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건물로
원래 이 자리에는 어제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문성사를 짓고 어제각은 현 위치에서 서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문성은 1624년 당시 왕이었던 인조가 이이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문성사의 현판은 예전의 광화문,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입구와 같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라 한다.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세워진 건축물이니 현판 글씨도 그 사람이 쓴 것일 듯.


사당 앞의 향로에는 다 탄 향의 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방인 몽룡실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신사임당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1536년 12월 26일, 신사임당은 용꿈을 꾸고 이이를 낳아 방 이름을 '몽룡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점이다.

비단 옛날에만 통하는 말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 관계와 인격을 닦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구.


오죽헌 근처에는 대나무가 많은데,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일반적인 대나무와 달리
검은 줄기를 가진 대나무들이 있다. 이를 까마귀 오에 대나무 죽을 써서 오죽(烏竹) 이라고 부르는데
이 건물이 오죽헌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 검은 대나무 때문이다.


좀 전까지 촬영을 계속 했던 박경림씨는 스탭들과 함께 다른 쪽으로 이동.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던 단체 학생 무리도 나가 다시 오죽헌은 조용한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건물 방 안엔 율곡제 때 출품된 휘호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고 있었다.
율곡제(栗谷祭)는 강원도 강릉시에서 이이(李珥)의 유훈과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해마다 행하는 지방문화행사로
‘대현이율곡선생제(大賢李栗谷先生祭)’라고도 한다. 이 행사는 1962년 11월 제1회율곡제전으로 출발하여
1998년 현재 37회에 이르렀으며, 대현이율곡선생제전위원회의 주관으로 매년 10월 25일을 전후하여 열리고 있다고 한다.


사임당이 서울에 있을 때 고향의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시.


이이가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쓴 격몽요결에 나와 있는 좋은 문구.
현대 사회와 가정에서도 이 문구가 어디까지 통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귀담아들을 문구인 것 같다.


부엌 쪽에는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듯한 장작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문성사 건립으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간 어제각.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어제각은 아주 작은 건물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 가까이 가지는 못헀다.


오죽헌 주변의 감나무에 감이 정말 많이 열려있었다.
올해 과일가게에서 감을 유달리 싸게 파는 걸 많이 보았는데 이래저래 예년에 비해 감 풍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 Continue =

. . . . . .


= 가을의 당일치기 강릉여행 일정 =

(6) 세계최조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 오죽헌(烏竹軒)-1

2017. 11. 7 // by RYU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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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가녀린 아이스크림 2017/11/07 11:35 #

    아... 저는 오죽헌이 강릉에 있는줄도 몰랐어요 ㅎㅎ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 탄생지라니...뭐..뭔가 좀...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왜 자랑스럽지 않은 기분이죠 ㅎㅎ 강릉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 Ryunan 2017/11/07 19:35 #

    뭔가 약간 오글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ㅋㅋ
  • 어라 2017/11/07 17:02 # 삭제

    박경림씨랑 같이 사진 찍었다니 어떤 프로에 나오길래 알고 싶네요
  • Ryunan 2017/11/07 19:36 #

    무슨 촬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같이 찍은 건 방송용이 아닌 개인적으로 요청드려서 촬영 안하는 때 찍은 거라...
  • 제네온 2017/11/10 10:50 # 삭제

    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살던 자취방이 오죽헌에 딱 달라붙어 있는 낡은 민가였습니다.
    (오죽헌은 강릉대학교까지 도보 15분 정도입니다)
    오죽헌 정문 반대방향에 후문... 이라고는 도저히 말 못할 개구멍 같은게 있는데 자취방 건물과 그 개구멍을 통해 오죽헌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오죽 무리와 감나무 무리 바로 뒤인데, 거의 20년 전이니까 지금은 막아놨겠죠.
    예전의 오죽헌은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주변시설이나 진입로 등이 변변치 못해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곳인데, 새단장을 한 모양이네요.
  • Ryunan 2017/11/12 00:08 #

    네,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도 꽤 괜찮은 편이고 시설 정비를 나름 잘 해놨더라고요 :)
    그리고 입장료가 3,000원이긴 한데 가격에 비해 관람할 만한 시설도 잘 갖춰놔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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