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류토피아 여름휴가, 홋카이도 북부
(54) 미소라멘은 서비스? 삿포로의 무시무시한 밥집
고쿠이치방 라멘 미도리야(こく一番ラーメンみどらや)
(본 여행기 작성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은 다음 링크의 여행기 1화 서두를 참고해 주십시오)
. . . . . .

바로 앞에 노란 천막의 작은 식당 하나가 보입니다.
가게 이름은 '고쿠이치방 라멘 미도리야(こく一番ラーメンみどらや)'
얼핏 보면 그냥 어디에나 하나쯤 있을법한 별 것 아닌 식당인데, 일부러 이 곳을 찾아온 이유는
여긴 반드시 가야 한다고 거의 반 강제적으로 강요(?)했던, 먼저 이 곳을 다녀온 이웃블로거 종화君 때문이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대기하는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별도의 번호표를 받거나 하진 않고
그냥 차례대로 순서에 맞춰 앉아있다가 앞에 사람이 빠지면 하나씩 들어가고 의자를 하나씩 옮겨 앉는 시스템.
처음엔 금방 자리가 빠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지는 속도가 느려 약 30분 좀 넘게 기다렸던 것 같네요.

가게는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 분은 정정해 보이지만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나중에 차자보니 모자지간이라는 이야기가...

2013년의 우수 라멘집 상도 받은 듯 합니다. 매장 안에 이런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라멘과 함께 그 외에 차항(볶음밥)이라든가 카레라이스 같은 메뉴가 몇 가지 더 있어요.
가격은 대략 7~900엔대로 일본 밥집 가격 생각하면 그냥 무난무난한 편.
하지만 이 가게를 찾아 온 사람들은 라멘집임에도 불구하고 라멘을 시키지 않고 다들 다른 메뉴를 시키는데요,
그 메뉴의 정체는 바로 '차항(볶음밥)' 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테이블이 전부 볶음밥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조리를 하는 분이 젊은 주방장.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열심히 요리에 열중.
거의 대부분의 주문이 볶음밥 주문인데, 한 번에 조리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주문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전에 바깥에서 기다린 것처럼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테이블 앞에 비치되어 있는 양념통으로는 간장, 고춧가루, 후추 등... 나무젓가락과 이쑤시개도 놓여 있습니다.


이 가게의 초생강 역시 우리나라 초밥 먹을 때 나오는 달달한 초생강이 아닌 단맛이 나지 않는 초생강입니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린 끝에... 제가 주문한 '볶음밥 단품 메뉴' 가 나왔는데요...
.
.
.
.
.
.
.

차항(볶음밥) - 850엔.

우리나라의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볶음밥을 시키면 그 위에 짜장 소스를 얹어 내어주는 집이 많은데
일본의 차항은 소스 없이 간이 된 밥만 볶아서 내어주는 게 대부분입니다. 아니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많습니다. 양이 정말 많습니다.
분명 곱배기라거나 2인분을 시킨 것도 아닌데, 양이 말도 안 되게 많아요.
팬 위에서 고슬고슬하게 볶아낸 밥을 대접에 꾹꾹 눌러담은 뒤
그 대접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뒤집어 둥근 모양이 유지된 채로 밥이 나오는데, 양이 너무 많아요.
850엔이라는 것도 안 믿기고 1인분이라는 것도 안 믿깁니다...

보통 이런식으로 양으로 승부보는 가게는 맛은 그렇게 좋지 않다, 크게 신경을 안 쓴다고들 하지만
문제는 이 볶음밥... 맛있습니다. 것도 '어, 맛있네...' 가 아니라 '...뭐 이렇게 맛있어?' 라고 할 정도로 맛있어요.
계란과 돼지고기, 그리고 파 세 가지만 넣고 별도의 간도 소금간만 한 게 전부인 이 볶음밥, 정말 맛있는데요
불맛이 살아있는 것은 물론 기름에 코팅되어 고슬고슬하게 씹히는 밥의 식감도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 일본 통틀어 요 근래 먹어본 볶음밥 중에선 단연 탑이라 해도 될 정도로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었어요.

그냥 차항(볶음밥) 한 가지만 주문한 거 뿐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볶음밥 옆에 라멘 한 그릇이 딸려나왔습니다.
이 라멘의 정체는 '서비스' - 그러니까 중화요릿집에서 볶음밥 시키면 짬뽕국물 나오는 것처럼 같이 나오는 국물요.
그 국물의 개념으로 밥과 함께 먹으라고 미니 라멘 하나가 딸려나옵니다.
사이즈가 미니 사이즈가 아니라 문제지...

게다가 그냥 국물에 면만 조금 맛뵈기로 담겨나오는 게 아니라 두툼한 돼지고기 차슈가 무려 네 장(...)
엄청나게 양 많은 볶음밥에 돼지고기 차슈 네 장을 얹은 라멘 한 그릇이 한번에 같이 나오는데 가격은 단돈 850엔.
...이 정도면 와 대단하다 정도를 넘어서 뭔가 좀 섬뜩한 느낌...;;

매장에 제면기가 있거나 직원이 더 없기 때문에 간편하게 시판 면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미소라멘 자체의 맛도 볶음밥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미소된장의 국물 맛을 잘 살렸고
적당히 기름진 맛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미소라멘이구나 - 라는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일본라멘 자체가 원래 그렇듯이 이 라멘국물도 꽤 짠 편이니 먹기 전에 그 점은 참고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지방 비율이 꽤 높은 편이라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식감.

여기는 라멘을 단품으로 시킨 것도 아니고, 볶음밥을 시켰을 때 서비스로 나오는 라멘의 차슈가 네 장이라...
대체 그럼 볶음밥을 시키지 않고 라멘을 단품으로 시키면 얼마나 많은 양이 나올지 신경쓰일 정도로 궁금합니다...;;
주변에 혹시라도 라멘 단품을 시킨 사람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았지만, 전부 저와 동일한 메뉴를 시켜 먹고 있더군요.

어떻게 밥은 다 우겨넣었어도 국물은 무리.
결국 라멘은 면과 차슈만 어떻게 다 건져먹고 국물은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 배 불러요(...)
그래도 밥 자체가 아주 맛있었고 미소라멘 또한 볼륨감이 좋아 좀 힘들었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남은 밥은 버리지 않고 포장이 가능합니다. 매장 내에 일회용 도시락 용기가 비치되어 있는데
20엔(용기 포장 가격)을 내고 도시락 용기에 먹고 남은 밥을 포장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밥을 시킨 손님들 모두 남은 밥을 용기를 사서 포장해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전 오늘은 귀국일이라 호텔에 들어갈 일이 없어 포장을 하더라도 먹을 곳이 없기 때문에 별도로 포장은 못 했지만요...
두 번째, 라멘의 종류는 그날그날 랜덤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오늘같은 경우는 다행히도 삿포로 지역을 대표하는 미소라멘이 나왔지만, 어떤 날은 쇼유 혹은 시오라멘이 나온다고...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돈코츠라멘은 이 가게에서는 나오지 않는 듯 합니다.
세 번째...가 가장 충격적이긴 한데, 저 볶음밥이요, 곱배기 선택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곱배기 주문시 추가 요금은 단돈 100엔. 하지만 나오는 양은 저것의 약 1.5배가 됩니다.
곱배기를 주문한 다른 손님 테이블로 볶음밥이 나가는 걸 보긴 봤는데, 거의 충격과 공포 수준이더군요(...)
. . . . . .
여러가지로 삿포로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고쿠이치방 라멘 미도리야(こく一番ラーメンみどらや)'
삿포로에 오면 삿포로에서 맛볼 수 있는 스프커리, 징기스칸 같은 요리를 먹어야지 무슨 볶음밥이야 싶겠느냐마는
여기는 일부러 한 번 찾아와볼 만 합니다. 특히 도전의식이 강한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군요.
(고쿠이치방 라멘 미도리야 타베로그 소개 및 약도 : https://tabelog.com/hokkaido/A0101/A010104/1002116/)
. . . . . .

이 근방의 궤도교통 수단은 오로지 삿포로 시영 전차 하나뿐이라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일본의 노면전차 정류장은 어느 도시를 가나 우리나라의 중앙버스차로 정류장과 매우 닮았습니다.

지하철 오도리역과 환승할 수 있는 니시4초메(西4丁目) 정류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야 하지만, 삿포로역과 가장 가깝게 접속하려면 이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다행히도 삿포로역과 오도리 역은 걸어서 이동해도 될 정도로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걸어가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북쪽 출구로 나간 뒤 오른쪽으로 조금 걸으면 또 하나의 '그 호텔' 이 보입니다.
'토요코인 호텔 홋카이도 삿포로 에키 키타구치 점'
= Continue =
. . . . . .

= 1일차 =
= 2일차 =
= 3일차 =
= 4일차 =
(54) 미소라멘은 서비스? 삿포로의 무시무시한 밥집 고쿠이치방 라멘 미도리야(こく一番ラーメンみどらや)
2019. 11. 10 by RYUNAN
덧글
중간에 차자보니 가 아니라 찾아보니. 그리고 저 간 날은 쇼유였네요.
어쩌다보니 결국 저는 료칸 1박 빼고 여행 내내 저 키타구치점에만 묵었었지요. 위치 진짜 좋긴 하던데.
한국에서도 옛날 볶음밥 먹을 수 있는 곳이 남아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