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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8. 오래 전 마음 속에 묻었던 기억, 다신 안갈 것 같던 군 복무시절의 흔적을 근 13~14년만에 되짚어보았다. by Ryunan

저는 군생활을 문산에서 했었습니다. 강원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기도 전방 지역에서 했지요.
부대 내 작전지도를 보면 부대에서 일산까지의 거리보다 개성까지의 거리가 더 가까웠을 정도였으니까요.

전역 이후 부대 근처는 다시도 가지 않겠다! 라고 맹세하며 살아온 게 십여 년이 훌쩍 넘게 흘렀고
그 결심(?)도 이제는 희미해져 군 생활 역시 생생하게 기억은 나지만 아주 옛날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금 그 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 거에요. 그래서 무작정 떠나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 당시 경의선은 수도권 전철이 다니지 않고 한 시간에 한 대씩 통근열차만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전역한 지 한참 이후에야 경의선에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고 지금은 전철로도 문산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 . . . . .



역간 거리가 제일 가깝기로 소문난 경의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수색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승강장 끝에서 수색역 방향을 바라보면 바로 앞에 수색역 역사를 육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산으로 향해 이동하는 열차. 금촌역을 지나니 시골 풍경으로 바뀌고 승객도 확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겨울을 맞이했기 때문에 논은 추수가 모두 끝난 황량한 상태.


문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 시각이 촉박해서 급히 뛰느라 역 사진은 못 찍었네요.
역 사진은 그냥 나중에 다시 돌아갈 때 찍자 생각하고 일단 문산읍 중심가인 (구)터미널 앞으로 왔습니다.
근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구터미널 앞 분위기는 생각보다 그리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군요.


다만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옛날 시외터미널이 있었던 자리는
지금은 '문산타워' 라고 하여 상가 빌딩 한 채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터미널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지금 시외버스 타는 곳은 문산역 근처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다만 여기서도 노선버스는 여전히 정차합니다.
정류장 이름 역시 '구 문산터미널' 로 여전히 남아있어 이 곳이 터미널 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애증의 버스 11-1번... 군부대가 있던 곳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노선입니다.
복무 당시에는 하루에 7~8번 정도밖에 다니지 않았던 버스로 한 번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버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배차간격이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1시간~1시간반에 한 대 꼴로 시각표를 보고 타야 합니다.


버스 시각표가 늦을까 급히 뛰었는데, 다행히도 도착 지연으로 인해 여유있게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뛰지 않아도 될걸... 하는 생각. 하지만 이거 놓치면 한 시간을 하릴없이 기다려야 했기에...


옛날에 탔던 버스는 흰 바탕에 파란 땡땡이무늬 도색의 버스였고 심지어 교통카드도 안 되었는데(...!)
(교통카드는 복무 중 설치가 되긴 했는데 처음엔 교통카드 단말기가 설치 안 되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버스 도색이 맞춰져 있었고 당연하겠지만 전철과의 환승할인까지도 가능합니다. 11-1번 도착!


다만 외진 시골 한참 구석으로 들어가는 수요가 많지 않은 노선이라 굉장히 노후된 차량을 사용합니다.
저도 요 근래 이렇게 낡은 차량을 타 본건 정말 오래간만. 흔들흔들 덜컹덜컹. 승객들도 대부분이 노인들.
와, 근데 전역 이후 처음 타는거니 이 버스, 거진 12~13년만에 처음 타 보는군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보니 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부대는 중간에 언덕을 하나 넘어 내려가면 그 바로 앞에 있었는데, 옛날에 봤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어요.


부대가 있는 위병소 바로 앞 풍경. 저 멀리 지나가는 버스가 좀 전까지 탔던 11-1번 버스.
버스는 여기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종점인 두포리까지 간 뒤, 다시 방향을 틀어 문산 방향으로 빠져나옵니다.


근처에 민가는 거의 없고 논과 산만 보이는 이 풍경은 진짜 옛날 모습에서 크게 바뀐 게 없네요.
부대 근처에 번화가는커녕 민가도 거의 없고 당연히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거니와
그나마 바깥 세상과 이어줄 수 있는 수단은 하루 7~8번 다니던 버스가 전부였던 나의 군생활.


다만 세세하게 바뀐 것들은 있어 옛날엔 없었던 이런 공장 건물이 들어와 있다거나...
예전에는 부대 밖으로 나가 저 공장 있는 곳 너머에도 저희 부대 땅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위병소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진은 없고요(^^;;)
살짝 밖에서 안을 보니 옛날에 지냈던 막사라든가 연병장 등 모든 건물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옛날엔 외박이든 휴가든 복귀할 때 저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진짜 죽는 것보다 더 싫었었는데
지금은 들어가서 옛날 흔적을 한 번 돌아보고 싶어도 다시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러니한 기분.

예전 부대 위병소 바로 앞에 있던 충성클럽(PX)와 면회소는 허물어져 있었더군요. 밖에서도 보였던지라...


두포리까지 갔던 좀 전에 탔던 11-1번 버스가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저 버스를 타야 합니다.


버스기사에게 받은 11-1번 버스 시각표. 지금은 하루 12회 운행하는 버스인데,
배차간격이 길어 여전히 버스를 한 번 놓치면 한없이 기다려야 합다. 그래서 옛날엔 부대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버스 시각을 놓치면 콜택시를 타고 많이 나오기도 했지요. 아마 지금 출타하는 장병들은 8시 15분 버스를 많이 탈 듯.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 곳. 시간이 많이 지나 그 감정도 이제는 많이 누그러지게 되었고
예전에 있었던 아련한 추억, 하지만 기억만큼은 생생했던 그 곳, 이렇게 다시 혼자 찾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또 아련한 기억이 떠올라지게 되는군요.
그냥 이 앞을 한 번 지나가는 게 전부인 것 뿐인데, 그래도 시간 내서 찾아온 게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곳을 찾을 일은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의 그 시절,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합니다 :)

2019. 12. 8 // by RYUNAN



덧글

  • 2019/12/08 23:06 # 삭제

    저도 예전에 살던 동네, 다니던 학교, 일하던 장소 등등... 아무리 '다시는 이곳에 안온다'라고 다짐했던 장소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고 싶더라구요. 다시 찾아가면 바뀐 부분들을 보면서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들, 감정들 모두 후련하게 떠나 보내게 되면서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시간이 약인건 맞지만, 결국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는게 진짜 치료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Ryunan 2019/12/12 23:45 #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시는 가기 싫은 곳이라도 시간이 약이라도 그 감정이 많이 누그러져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말씀하신대로 저도 저 곳을 보고 다시 나오면서 그 뭔가를 떠나보낸 후련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
  • ahgoo 2019/12/19 14:38 # 삭제

    아.. 형 면회갔을때 기억난다.. 도착이 너무 늦어가지고 풍경이 기억안났었는데 저 버스 회차해서 돌아오는거 보고 급 기억남.
  • Ryunan 2019/12/19 22:43 #

    그게 2006년 1월이었구나...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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