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정말 잘 나가던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다른 프랜차이즈에 밀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서울 개봉동에 딱 한 군데 남아있다는 정보를 들어, 블로그 이웃 종화君과 함께 탐방에 나섰습니다.
개봉역에서 내려 지도 보고 굽이굽이 골목길을 뒤져 바이타임 매장을 겨우겨우 발견!
색은 많이 바랬지만 저 바이타임 로고, 게다가 시계모양 마스코트까지...!
옛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 바이타임이 맞습니다. 와, 이게 얼마만이야...! 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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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포털 검색을 해 봐도 '바이타임' 이라는 이름으로 최후까지 남아있던 매장이 이 곳 뿐이었거든요.
일부러 이거 하나 바라보고 종화君과 함께 이곳까지 찾아간 거였는데, 둘 다 잠깐동안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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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산역 앞 정류장을 내리자마자 가게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라임하우스' 라는 곳.

라임하우스는 철산역 앞에 위치한 '경양식 전문 레스토랑' 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양식 전문점이라니, 저 조금 촌스러운 로고에서 뭔가 친숙함과 함께
들어가봐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 매장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습니다.

경양식 전문점이 8~90년대 유행했기 때문에 역사가 아주 오래되진 않았지만
절묘하게 8~90년대 경양식 전문점의 막차를 탄 가게가 되겠군요.


식사를 하기 전 손 씻고 들어오라는 건지,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뭔가 느낌이 되게 좋군요.

저희가 식사하는 도중에 세 팀 정도의 손님이 새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신포시장 근처의 씨사이드(http://ryunan9903.egloos.com/4430440)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실내 인테리어.
1999년 오픈했으니 경양식 전문점으로 오래 된 가게는 아니지만, 분위기만큼은 다른 곳에 뒤지지 않습니다.

왠지 메뉴판에 글씨가 명조체로 되어 있으면 뭔가 묘한 믿음이 갑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주문할 것으로 추정되는 기본 돈까스 가격은 9,000원.
그리고 정말 요새 찾아보기 힘든 메뉴인데 '비프까스' -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비후까스' 가 있습니다.

주류, 음료도 구색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음료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인데요,
아마 음료는 사실상 자리세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원두커피나 녹차 한 잔에 5,000원이면 센 편이니까요.

서빙 아주머니, 주방 아저씨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 가게인 듯 다른 직원은 없네요.


맛은 약간 연하긴 한데 오뚜기 스프는 아닌 듯.
스프 위에 마늘 후레이크가 살짝 얹어져 있는게 조금 독특하긴 하군요.

따로 주문한 게 아닌데 서비스로 레드 와인이 한 잔씩 제공되었습니다.
아마 돈까스 같은 식사류를 주문하면 기본으로 조금씩 내어주는 듯. 미성년자에게는 음료가 가지 않을까 싶군요.
당연히 고급 와인은 아닌 달달한 스위트 와인이었는데, 식전 가볍게 마시기에는 딱 좋은 양입니다.

위에 얹어낸 소스는 아일랜드 드레싱.


샐러드가 나온 후 메인 음식들이 본격적으로 나와 음식을 전부 세팅한 뒤 사진을 한 컷 찍었습니다.

참고로 라임하우스는 경양식 특유의 '밥과 빵' 을 선택하는 옵션이 따로 없습니다. 무조건 밥으로 통일.

역시 밥, 빵 선택 옵션은 없이 기본이 밥. 그리고 음식 담긴 모습만 보면 돈까스와 다를 바 없습니다.
튀김옷이 돈까스에 비해 좀 더 짙은 색을 띠고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고 소스도 동일.

어릴 적 부모님과 같이 돈까스집에 갔을 때 '비후까스' 라는 게 뭔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돈까스에 비해 꽤 비싼 가격 때문에 '안돼!' 하고 못 시키고 돈까스를 먹어야 했던 기억, 많이 갖고 계실겁니다.
어릴 땐 경양식 돈까스만 먹으면서 '비후까스가 뭘까...' 라며 궁금해했지만 결국 먹을 수 없었던 그 음식.
성인이 되어 내 돈 내고 내 맘대로 비후까스도 시킬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오이무침은 약간 오이나물 같이 살짝 조리되어 나오는데, 오독오독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좋은 편.

총 세 덩어리의 돈까스가 나오는데 고기가 얇기 때문에 양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닙니다.
직접 만든 소스가 사람에 따라 취향이 좀 갈릴수도 있겠다 -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일전 잉글랜드 돈까스에서 맛본
옛날 경양식 감성을 100% 재현한 소스가 아닌 상당히 농후하고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소스입니다.
소스의 자극적인 맛이 꽤 센 편이라 단 맛을 싫어하는 분들은 취향이 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저야 뭐... 원래 달고 자극적인 음식 좋아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요.

이제는 내 맘대로 시킬 수 있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돈까스에 비해 색이 짙은 쇠고기 단면. 질기지 않고 오히려 돈까스보다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습니다.
소스는 동일하긴 하지만 돈까스에 비해 의외로 더 식감 부드럽고 진한 고기맛이 더 느껴져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왕 온 김에 궁금한 메뉴는 전부 시켜보자! 라며 함께 주문한 '나폴리탄 스파게티(9,000원)'
그런데 스파게티 나온 게 아무리 봐도 내가 생각했던 '나폴리탄' 과는 상당히 거리 있어보이는 모습이었어요.
http://ryunan9903.egloos.com/4399950 <- 이 포스팅에서 나왔던 케찹에 볶아낸 스파게티를 생각했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른 스파게티가 나와서 같이 간 종화君과 함께 둘 다 '...어라?' 했습니다. 심지어 해산물까지 있어요.

살짝 구운 마늘빵 두 쪽이 같이 제공됩니다.

섞어놓고 나니 더더욱 내가 생각했던 케찹에 햄 들어가는 나폴리탄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 느낌.

그리고 조금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의외로 되게 괜찮은 맛이라 먹으면서 둘 다 '오?' 하면서 감탄.
오히려 돈까스나 비프까스보다 이 가게의 자칭 나폴리탄 스파게티 쪽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일반적으로 제가 생각했던 나폴리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음식이지만
해산물을 넣은 건더기가 푸짐하고 토마토 베이스의 소스 맛 또한 꽤 진한 것이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오래간만에 경양식집 가면 돈까스 먹을 생각만 했지, 그땐 스파게티까지 먹을 생각은 못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돈까스에 스파게티까지 추가로 시킬 수도 없었고... 역시 어른이 되면 이런 게 좋습니다.

소스의 맛이라든가 스타일이 정통 경양식과는 살짝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좋아 옛날 경양식 감성을 느끼며 꽤 즐겁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간 날에는 단감이 한 쪽씩 나왔습니다.
가정집에서 과일 대접받는 것처럼 깎은 뒤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것이 특징.

커피, 녹차, 콜라, 사이다, 네 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땐 콜라 사이다를 마셨지만, 지금은 커피.
커피까지 서비스받으며 느긋하게 식사하고 나오니 제대로 된 풀 코스를 즐겼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근처를 배회하다 발견한 '라임하우스' 에서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경양식은 맛도 맛이지만 사실 추억 속 '분위기' 를 즐기기 위해 가는 목적이 더 큰데, 인테리어도 그렇고
지나친 화려함은 없지만 소박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경양식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충분히 합격.
그리고 오리지널과는 거리가 있지만 매장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꽤 맛있게 만든 스파게티도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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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4 // by RYUNAN
덧글
(경인선 북쪽은 개봉동이라도 영 따로놀긴 합니다만)
벌써 30대가 되었네요. 류난님의 비후까스 강조의 의미가 저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